▶ 안기부 내에 '동림'이라는 첩자가 있다
안기부 13년 차 박평호 차장의 해외팀과, 국군 중령 출신 안기부 4개월 차 김정도 차장의 국내팀은 미국 CIA와 합동하여 워싱턴에 방문한 대한민국 1호 VIP를 보호하는 임무를 진행 중이다. 강무영 안기부장은 CIA 아시아 지부장과 국내 정세에 대해 기싸움을 하고, 극장 정문 밖에서는 대통령의 독재에 거세게 반대하는 한인 교포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대통령이 극장으로 향하던 중, 안전을 위해 주변지역을 감청하고 있던 CIA에게서 외국인 저격수와 테러범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안기부 국내팀과 해외팀은 극장 내로 진입한다. CIA와 안기부는 저격수와 테러범과 총격전을 벌이고, 박평호는 용의자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지만, 김정도가 용의자를 사살하면서 용의자는 죽게 된다. 박평호는 용의자를 죽이면 어쩌냐며 김정도에게 화를 내지만, 오히려 김정도는 인질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며 박평호를 무시한다. 일본 도쿄, 대통령의 방일 일정을 앞두고 망명을 신청해 온 북한의 핵 과학자 표동호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박평호와 도쿄 지부장 양보성 과장과 요원들은 함께 모여 작전을 세운다. 익명을 고집하는 망명자에게 신분을 밝히라 요구하지만 그는 안기부 내에 '동림'이라 불리는 첩자가 있다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또한 오늘밤 남측의 북파 정보부대가 북한으로 침을 시도한다는 정보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 즉시 국내팀에게 작전이 유출되었음을 알리지만 결국 인민군들에게 발각되어 부대원 모두가 사살당하고, 표동호 망명작전도 강 부장의 이중지시로 실패하면서 안기부 내에 '동림'이라는 첩자가 있는 것이 확실시된다. 작전은 실패하고 요원들과 부대원들이 모두 죽자 박평호는 모든 책임을 강 부장에게 전가시키며 지금까지 조사해 둔 강 부장의 비리 증거들을 내세워 사표를 쓰라 강요한다. 결국 강 부장은 퇴임하고 새로운 안기부장으로 안병기 부장이 오게 되고, 그는 동림을 잡기 위해 박평호와 김정도를 따로 불러 김정도에게는 해외팀을, 박평호에게는 국내팀을 조사하게 한다. 안부장의 명령으로 서로를 조사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가 서로를 동림으로 의심하게 되는데...
▶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 해외반응, 국내반응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첩보 액션 스릴러 시대극 영화 [헌트]는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이다. 원래 제목은 [남산]이었으나, 이정재가 판권을 구입한 후 각색하는 과정에서 영화[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면서 지금의 제목인 [헌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처음엔 국내 대형 자본 영화들 사이에서 가장 최약체로 분류되는 분위기였으나, 사전 블라인드, 시사회, 이동진의 GV후기에 의하면 첫 연출을 맡은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가 높았다. 전반적으로 잘 짜인 스파이 스릴러물의 구성을 보여주며, 이정재와 정우성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액션씬도 비중이 높아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적인 논란도 제기될 수 있는 스토리였으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배경이나 인물 설정상 실제 한국 현대사의 이런저런 사건이나 단체를 모티브로 삼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난해하거나 어려운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한국 현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도 제75회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시사회 할 당시에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고 하며, 오히려 국내개봉버전은 칸 시사회 버전보다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을 쳐냈다고 하는데도 국내관객들 또한 내용이 복잡하다는 평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긴장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첩보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물을 잘 소화한 데다 한국의 1980년대 초라는 시대 묘사에 있어서도 철저하다는 의견과, 영화 전반에 위치하는 액션씬도 단순히 인물들이 총싸움을 한다는 인상보다도 인물들이 가진 서사와 감정이 액션을 통해 나타나는 점이 매우 좋았다는 호평이 있는 것을 보면 이정재 감독의 입봉작으로는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영화의 해석
주인공인 박평호와 김정도는 선악으로 구분하기 힘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다. 김정도는 민주주의와 반독재를 상징하며, 박평호는 평화와 반전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으며,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눈군가를 죽이거나, 이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 첨예한 냉전체제 아래에서 비참한 인생을 산 피해자임과 동시에 수많은 타인을 억압한 가해자인 셈이다. 작중 초반 아내를 구실로 김정도가 박평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은 대통령 암살을 위한 동지를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였다고 볼 수도 있다. 김정도는 금융사기 사건을 넌지시 이야기하며 정권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박평호가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10.26 당시의 악연을 이야기하면서 포섭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조유정은 마지막에서도 나왔듯이 북한에서 온 박평호의 감시역이었다. 안기부로 끌려갔을 때 그 긴 시간 동안 모진 고문을 버텨냈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 장기간 고도로 훈련을 받아온 비밀요원이자 간첩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평번한 재일교포 출신의 여대생이었다면 그 모진 고문을 버텨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평호는 3년 전 조유정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자신의 감시역이라는 걸 눈치챈 걸로 보이는데, 박평호의 전감시역이었던 조원식이 죽기 전에 '곧 누군가 다시 올 거야'라고 말한 뒤 조유정이 나오는 연출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원식의 장례식장에서 조유정을 첫 대면했을 때 박평호가 '너 몇 살이니?"라고 묻는 장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여자아이에 대한 동정심을 표현한 게 아니라, 나이가 스물도 안돼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마저 첩보원으로 써먹는 비인간적인 북한 정권에 대한 경악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5.18을 계기로 군사정권의 잔악무도함에 환멸을 느끼는 명확한 전사가 있는 김정도와는 달리, 작중 박평호의 전사는 빈약하고 모호한 편인데, 왜 남한에 간첩으로 내려왔는지, 무조건적인 평화주의를 추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작중에서는 일절 묘사되지 않는 걸 보면, 박평호는 조유정처럼 매우 어린 나이에 남파되었고, 6.25로 대표되는 전쟁과 학살에 대한 모종의 트라우마로 남한과 북한 정권 모두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평화만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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